2016/02/17 23:48

16021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MMCA) '윌리엄 켄트리지 : 주변적 고찰 (William Kentridge : Peripheral Thinking)' Part 1 of 2. --- 문화생활



광화문 스시효에서 식사를 한 후,
인근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와서 전시를 봤다.
어머님도 좀 소화를 시킬 필요가 있어 천천히 걸으면서 보시기로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오픈 당시 한번 왔으니 이번이 두번째 방문.
오픈 초기의 전시에 상당히 실망을 했었는데 이번에 윌리엄 켄트리지의 전시가 있다고 해서 방문했다.















윌리엄 켄트리지 : 주변적 고찰.
William Kentridge : Peripheral Thinking.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기 전, 윌리엄 켄트리지의 부조 작품을 보고,
이 스터드 뒷쪽에 설치된 율리어스 포프 (Julius Popp)의 설치작업을 본 후 내려갔다.















율리어스 포프의 설치 작업.








대한항공의 박스 프로젝트란다.
모르겠다.
우리나라 미술계도 대부분의 스폰서쉽은 죄다 대기업 차지.








와이프는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율리어스 포프의 설치작업에 대해선 그닥 할 말이 없고.
우린 바로 윌리엄 켄트리지의 전시를 보기 시작.








도슨트 프로그램.
우리는 그냥 우리끼리 천천히 관람했다.








윌리엄 켄트리지.
격변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1960~80년대.
켄트리지는 유복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인권변호사인 부모님의 정치적 자양분을 흡수하여 남아공의 인종차별주의에 비판적 철학을 공고히 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 스펙트럼은 드로잉, 설치작업, 영상작업, 조각등 매우 폭넓은데 놀랍게도 그 작품들이 모두 하나의 테제로 일관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교과서 페이지마다 그림을 그려 움직이는 플립북 애니메이션을 구현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켄트리지의 이 작업들도 그와 유사하다.








그 퀄리티와 사유의 표현 방식이 놀라울 뿐이지.








이 책을 와이프는 참 갖고 싶어하더라.





























윌리엄 켄트리지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부정하고 비판했지만 그 자신이 백인 특권층이라는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나보다.
그가 느낀 주변인으로서의 고뇌와 성찰은 그의 작업들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목탄을 주로 이용한 놀라운 회화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공간.








말의 코.








운명으로부터 달아다는 사람.















예술가를 석방하라.
거대한 축음기를 통해 노래하는 민가가 들리는 듯 하다.








거꾸로 매달린 자전거 휠에 연결된 확성기.
소수의 백인 자본이 다수의 흑인을 착취하는 도치된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그리고 도치된 위치의 자전거 휠을 돌려 운동을 선동하는 확성기.
의미가 명확하다.
그리고 이 회화 속 자전거 휠과 확성기는 설치작업으로도 구현되어있다.








<시간의 거부>








그림 속에 보이는 퍼포머는 바로 '다다 마실로'














그의 회화에 등장하던 구조물은 설치 작업으로도 구현되어있다.








3각 트라이포드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자전거 기어와 휠.
소수의 백인 자본이 다수의 흑인을 착취하는 도치된 사회구조를 반영한 듯 한 느낌.
그리고 그 자전거 휠에 연결된 확성기.
끊임없이 휠을 돌려 확성기를 통해 흑인 사회의 결집과 운동을 주장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Cast Out Fear.








두려움을 쫓아내라.
대학에서 정치학과 역사학을 공부한 켄트리지는 연극을 공부한 후 극단에서 포스터 제작과 무대 미술을 도맡곤 했단다.
그러다 중국에 방문하여 '양판희'라는 혁명적 프로파간더 연극에 깊이 매료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인터내셔널 찬가를 배경으로 파리 코뮌 당시의 신문, 포스터, 한자 주해등의 책 위로 수묵화가 펼쳐지곤 한다.








놀랍지 않은가.
보는 이에게 이토록 강렬한 에너지를 전달해주는 그림을 발견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Part 2에서 계속.